천지분간 못하던 신입생때 우리 과방은 지하의 음습한 냄새가 풍기는 그런 곳이었다. 과방은 흡연이 가능했고 찢겨진 고동색의 쇼파와 낡은 탁자가 있던 곳에 형들은 널부러져 있거나 뻐끔뻐끔 담배를 피며 자판기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런 과방에 학생회장은 누나들이었다.

깡마른 체구에 매서운 눈매를 가졌던 약간 신경질적으로도 보였던 누나와 다른 누나들은 여느 형들보다 맛나게 담배를 피우곤 했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 그녀들의 흡연에 남성의 흡연만 당연시 여기고 여성의 흡연은 비정상적으로 제지하던 사회 풍조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섞여있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누나들을 보고 학회에서 입문서적으로 읽었던 성정치에 대한 책을 보면서 그렇게 나는 페미니즘을 접하게 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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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짧은 머리로 이해했다 생각했던 페미니즘은 억압된 여성에 대한 해방운동의 측면이 컸다. 워낙 남성위주로 편성된 사회이기에 어떤 것이든 여성의 측면에서 주장하면 거의 페미니즘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여혐과 남혐, 일부 비틀린 페미니즘 등을 관전하면서 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모양이 달라졌다. 과거에 옳다고 배워왔던 것에 대한 결별과 새로이 배운 개념, 느낀 점 등은 그래도 나는 페미니스트 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안겨줬다.

페미니즘 또는 성평등 운동의 시발점은 억압된 일부계층에서 시작하면 안된다는게 내 결론이다. 과거 억압되어왔던 배경을 토대로 시작하는 성평등 운동은 억압된 것에 대한 복수 또는 그것에 대한 탈환 등으로 결론이 나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평등의 기본적 출발선상은 같은 "인간"임에서 출발해야 한다. 디폴트가 현재 또는 과거의 불평등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 원래 평등한 상태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시작점에서 각 개체의 차이점을 토대로 구분하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같지만 각 객체별 특성에 따라 차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차이점은 구분을 해야 할 실익을 가져온다. 남자 여자가 같은 인간이지만 각 성의 차이로 인해 화장실을 달리 써야 하는 필요를 가져오기 때문에 화장실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야 한다. 같은 구분점이다.

구분점을 찾는 과정에서 차별을 선별해내야 한다. 구분할 실익이나 근거가 없는 구분은 차별로 볼 수 있다. 여성은 집안일을 해야하고 남성은 바깥일을 해야 한다는 구분은 현재 그 실익이 없거나 미비하며 그 근거는 논리적 타당성을 잃은지 오래다. 이런 구분과 차별을 분리하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을 줄여가는 운동인 성평등 운동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평등의 기본으로 기계적 평등이 아닌 각 구분점이 반영된 실제적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평가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가령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의 평수를 같게 설계하는 것은 기계적 평등이지 실제적 평등에는 벗어나는 실례다. 소변기를 사용할 수 있는 남성의 경우 같은 평수에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의 수가 여성의 그것보다 많다. 구분점에 따른 특성을 반영한다면 여성의 화장실이 남성의 화장실보다 넓고 많은 칸수로 구성되어야 실제적 평등을 실현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실상을 기계적 평등에 그 초점이 맞춰져있고 여성주의 또는 성평등을 표방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얼마나 억압받아왔는가에 대한 성토를 더 많이 하는 것 처럼 보인다. 거기에 더하여 여혐문화까지 범람하면서 이전투구를 연상케하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페미니스트를 꼴페미로 표현하고 성평등을 주장하는 남성을 마치 여성에 빌붙어 샤바샤바 하는 사람처럼 폄하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을 김치년이라는 편리한 단어로 덧씌워 화두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꼴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전에 풀어놓았던 이주아동에 대한 문제도 그리고 오늘 풀어놓는 성평등의 문제도 그리고 언젠가 풀어놓을 성소수자의 문제도 결국은 인권 문제의 한 형태이다. 인권이라함은 결국 언제든 인간인 나의 문제로도 발전될 수 있다는 말 일 것이다. 그때마다 내 주장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존중의 정도가 결국 인권의 기본이라는 것.... 같은 사람이기에 서로에 대한 존중이 조금쯤은 확장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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